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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정보

[안동/도산서원] 도산서원을 거닐다

워크샵 마지막 날 서울로 올라오기전에 도산서원에 들렀습니다. 한국문화교류단의 워크샵인만큼 우리나라의 선비정신이 깃든 도산서원을 빼놓는다는건 안될 말이지요. 한국정신문화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도산서원은 워크샵이 열린 군자마을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위치해있습니다. 간략하게 도산서원에 대해서 말하자면 퇴계 이황 선생이 조선 명종 16년인 1561년에 도산서당을 먼저 세웠고 사후인 선조 7년, 1574년에 문인과 유림들이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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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이라고 적혀있는 현판의 모습입니다. 현판은 선조 임금이 사액하였고 글씨는 조선시대의 명필로 익히 유명한 한석봉의 필체라고 전해집니다. 글자의 획 하나하나에서 힘이 느껴집니다.

다소 특이한 형태로 보이는 사진 속 장소는 시사단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퇴계 이황선생을 평소 흠모하였던 정조임금이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자 친히 도산서원에서 과거시험을 시행하였는데 이것을 도산별시 또는 도산별과라고 하였습니다. 지방에서 행해지는 유일한 과거시험이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서원에서 시험을 보기에는 장소에 무리가 따랐기에 강 건너 터를 잡아 시사단을 만들어 이곳에서 과거시험을 보았다고 합니다. 언덕처럼 생겼는데 사람들은 어디에 앉아서 시험을 보았을지 .... 많은 사람들이 청운의 부푼 꿈을 안고 시험을 보았을 시사단의 풍경입니다.

네개의 나무기둥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한 그루의 나무였다고 합니다. 안동댐이 건립되면서 수위가 높아지자 3미터의 흙을 쌓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우물은 열정이라 불리는 우물입니다. 먼 옛날 퇴계 이황 선생께서 이 우물물을 마셨다고 하는데 지금은 마실 수가 없습니다. 마실 수 없는 우물을 한참이고 들여다보았습니다.

암서헌이라는 곳입니다. 도산서당의 마루에 걸려있는 현판이지요. 도산서당은 4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이곳은 퇴계 이황 선생이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입니다.

광명실이라는 곳입니다. 책을 보관하던 서고였으며 현판은 퇴계 이황 선생의 친필입니다. 빛광에 밝을명을 쓰는 광명실 .... 밝은 빛을 머금은 서고이니 책을 보관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은 없을 듯 합니다.

진도문 뒤로 도산서원 현판과 전교당이 보입니다. 나아갈진에 길도, 도산서원을 둘러보다보면 곳곳에 붙은 현판에 새겨진 이름들마다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배움의 전당인 이곳에서 열심히 학문을 닦고자 했던 이들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겠지요.

건물의 나무기둥들을 살펴보다보면 이렇게 구멍을 양쪽으로 뚫어놓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별생각없이 지나가다가 나중에는 의문이 들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나무기둥이 쉽게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알면 알 수록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조상들의 건축 지혜입니다. 무조건 높은 빌딩이 아니라 작은 전각을 하나 짓더라도 정성을 들였던 조상들의 이러한 마음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을 나무들 .... 많은 세월을 견디다보니 나무도 휘어졌나봅니다. 여기 있는 나무들도 도산서원에서 학업에 정진하며 지냈을 많은 이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로 떠나기전에 단원들과 단체사진을 남겼던 시사단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이곳. 지금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